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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머스트잇 '2022 베스트 어워즈'1위 구찌

by quantwongi 2022.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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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구찌의 최근 행보

내년 5월부터 한국에서 구찌가 패션쇼를 연다고 합니다.  지난달에 경복궁에서 패션쇼를 개최하려 했지만 무산되었습니다.

내년 '2024년 크루즈 컬렉션'과 함께 나오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케어링그룹 소속인 구찌는 국내에서 꾸준한 인기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구찌는 최근 K팝 아이돌과 배우를 앰버서더로 임명하고 K팝을 이용한 팬심을 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아이돌 그룹 엑소의 카이는 2019년부터 구찌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가수 아이유도 이어서 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뉴진의 하니도 앰버서더로 선정되었습니다.

구찌의 역사

많은 유럽의 명품이 그렇듯 창립자 구찌오 구찌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브랜드입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GG는 구찌오 구찌의 앞글자를 따온 것입니다. 구찌오 구찌는 1881년 피렌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났을 때의 그의 집은 대대로 밀짚모자 가업을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찌는 더 이상 사람들이 밀짚모자를 쓰지 않을 것을 예상했습니다.  그는 16살이 되었던 해에 런던으로 건너갑니다.

 

런던으로 건너가 그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사보이 호텔을 찾아간 것입니다. 사보이 호텔은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호텔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이 호텔은 지금까지도 유럽에서 상류층들이 즐겨 찾는 호텔입니다. 구찌오 구찌는 이호텔에서 벨보이로 일하며 귀족들과 상류층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연구했습니다.

 

또한 그들이 즐겨 입는 옷과 액세서리는 무엇인지, 그들의 문화는 어떤지를 일을 하며 체험하게 됩니다. 벨보이로 일하면서 그가 가장 많이 접했던 것은 손님들의 가방이었습니다. 이렇게 그는 상류층들의 고급가죽 가방들을 접하면서 상류층들을 위한 가죽가방들을 만들어야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보이 호텔에서 5년 동안 일했던 구찌는 다시 피렌체로 돌아갑니다. 당시 피렌체에는 전 세계 최고의 가죽공방들이 모여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피렌체의 한 가죽공방에 도제로 들어가 무려 19년이나 기술을 갈고닦았습니다. 19년이 지나 1921년,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판단한 그는 피렌체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G.GUCCI를 오픈합니다.

 

구찌는 처음에는 승마 용품 위주의 가죽제품을 만들었다가 점차 가방, 신발, 벨트 등으로 제품군들을 확장해 나가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구찌오 구찌의 첫째 아들이었던 알도 구찌는 구찌의 첫 번째 위기에서 천재적인 수완으로 구찌를 위기에서 구해냅니다.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의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독재국가이자 패전국이었던 이탈리아에게 수출 제한을 걸면서 그들은 가죽 수급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에 수많은 가죽 브랜드들이 도산하게 되었습니다.

 

알도 구찌는 이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았습니다. 처음에 그는 나폴리에서 산 삼 같은 것을 모아서 리넨으로 된 가방을 만듭니다. 그는 소가죽을 대신할 대체재를 찾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구찌를 대표하는 캔버스 제품을 만들기 시작하고 몇 안 되는 수입가능 품목 중 하나인 일본의 대나무를 수입해서 가방 손잡이에 구찌의 시그니처가 된 뱀부백을 탄생시켰습니다.

 

이렇게 위기를 극복한 구찌는 미국에 첫 매장을 열게 됩니다. 미국의 첫 매장의 위치는 바로 뉴욕에 있는 사보이 호텔에 지어졌습니다. 구찌오 구찌가 세상을 떠난 후 구찌는 첫째 아들 알도 구찌와 셋쨰아들 로돌프 구찌가 각각 50%씩 경영권을 승계받으며 공동경영체제로 돌입하게 됩니다.

 

이 둘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서로 의논하면 구찌를 더욱 크게 키워 나갔었습니다. 하지만 3세 경영에서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알도 구찌의 아들인 파울로 구찌가 경영권을 승계받지 못하고 셋째 아들 로돌프 구찌의 아들인 마우리치오 구찌가 경영권 승계를 이어받자 파울로 구찌는 자신의 개인 브랜드인 파울로 구찌를 만들고 기존 구찌의 하위 버전의 상품을 만들었습니다.

구찌의 매각 후 행보

구찌 경영권을 물려받은 마우리치오는 자신의 사촌 형의 방해와 각종 일들로 인해 구찌를 팔아버리기로 결심합니다. 구찌는 1994년 한 투자회사의 손에 넘어가게 됐습니다. 그들은 먼저 파울로 구찌 브랜드를 없애버리는 것과 각종 인재들을 등용하는데 그중 톰포드가 구찌의 디자인 팀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5년 뒤 구찌의 옷 선글라스 향수 광고 매장까지 책임지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됩니다. 2002년에는 구찌의 부사장으로 되었습니다. 캐링과 톰포드의 관계가 나빠지게 되면서 톰포드는 구찌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뒤를 이은 지아니니 또한 매출 성적 부진으로 구찌에서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 미켈레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되자 다양성들을 수용하면서 단숨에 상위 브랜드로 다시 도약했습니다.

그의 전략은 다양성을 수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구찌의 옷들을 스트릿화 하여 재디자인했고 메타버스 등 다양한 이벤트에도 구찌를 접목시켰습니다. 현재는 전 세계 명품 브랜드 순위 중 루이뷔통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구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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